전체 배치도


1

대성전(大成殿)

제주향교 대성전은 중요한 공자를 비롯해 안자, 증자, 자사자, 맹자 5성(五聖)을 배향하고, 공자의 10인 제자와 중국 송나라 때의 성리학자 6인, 한국 유학자 18인 까지하여 총 39위(位)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있는 중설위(中說位)이다.

대성전은 정면 5칸, 측면 4칸으로 전면 퇴칸은 개방하여 고주열에 벽체를 설치하고 창호를 달았다. 나머지 삼면에는 현무암 화방벽을 설치하였으며, 기둥은 평주와 고주 모두 약한 민흘림을 주었다. 특징적인 것은 귀포와 배면포의 외목도리 장여 하부에 처마의 처짐방지를 위한 덧기둥을 설치하였는데,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제주도에서도 제주향교와 대정향교 대성전에만 나타난다. 또한 제주향교 대성전 덧기둥 상부에는 다른 건물에서 보기 힘든 문양과 교두형 부재가 보이고 있어 지역적 특색이 반영된 이 건물만의 특징이라 하겠다.

가구는 2고주 7량가로 부재가 길이에 비해 가늘고 긴 편이지만, 대들보를 항아리형에 가까운 형태로 가공하는 등 부재의 가공이 깔끔하여 정제된 느낌을 준다. 이처럼 제주도의 대표적인 유교 건축 문화유산인 제주향교 대성전은 1827년(순조 27)에 옮겨 세운 후 현위치에서 큰 변형없이 형태를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주도 건축의 특성을 잘 나타내는 건축 문화재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6년 6월 13일 대한민국 보물 제1902호로 지정되었다.


2

명륜당(明倫堂)

명륜당은 유생(儒生)들이 학문 익히는 공간인 학당(學堂)이다. 1534년(중종 29) 9월 송인수(宋麟壽, 1487~1547)의 후임으로 심연원(沈連源)은 제96대로 제주목사의 부임하여 1537년(중종 32) 6월에 예조참의에 임명되어 떠났는데, 그 사이 1534년 겨울 남성(南城) 안에 향학당(鄕學堂)을 건립하였고, 1536년(중종 31) 가을에는 교수 이의영으로 하여금 감독하게 하여 제주향교의 명륜당을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명륜당은 본래 막돌 기단에 잔돌을 이용해 지어져 아름다움이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하나, 1965년 화재로 소실되어 지금의 자리로 옮겨 새로 지었다.


3

계성사(啓聖祠)

계성사는 1854년(철종 5)에 지어진 건물로서 오성(五聖)의 선대인(先大人)의 5성(五聖)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그 이전에 이미 제주 판관을 지낸 김영업(1784~1835), 신상흠(愼尙欽, 1794~1874) 등이 제주향교의 위상에 걸맞게 계성사를 세울 것을 주장하는 상소를 올렸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어 고사징(1806~1865)의 상소가 영의정 김좌근에 의해 철종에게 보고되어, 지금의 계성사가 세워지게 되었다. 

한편 2012년 계성사 건립 당시의 상량문 원본과 함께 새로 발견된 제주 유생들의 등장(等狀)에서 이미 1774년(영조 50) 제주 유생들이 “우리 본주(제주)의 향교 체제는 문묘의 제도이며 국학(성균관)과 조금도 다름이 없으니, 성균관에 계성사가 있듯 제주향교에도 반드시 계성사를 지어주어야 합니다. 공자, 안자, 증자, 맹자, 자사의 선대인들께서 동서문 아래의 집에 모셔져 있으니 민망하기 그지없습니다.”라고 호소했고, 당시 제주의 순무어사(巡撫御使)였던 홍상성이 즉석에서 “일이 아주 중대하기 때문에 천천히 잘 생각해봐야겠다. 옛 법에 제주를 국도로 인정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서울에 올라가 임금에게 보고해서 처리하겠다”라고 회답한 내용을 적은 것이 확인되어, 건립 자체는 이미 예전부터 건의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계성사는 전국에 제주향교와 전주향교 뿐이라 그 가치와 지위가 매우 높은 유산이다.


4

전사청(典祀廳)

전사청은 나라에서 지내는 제사를 맡아 보던 기관이다. 향교에도 문묘의 제례에 필요한 제수용품을 준비하는 등의 제사 업무를 수행하는 전사청을 두었다.

전사청의 위치는 성균관의 건물 배치법에 따라 대성전이 좌측에 두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제주향교에는 1969년 이전에도 현위치에 전사청으로 추정되는 건물이 있어, 대성전 좌측에 전사청 자리를 잡았다. 지금은 원래의 자리로 복원을 하려 준비하고 있으며, 지금의 건물은 1991년에 전면적으로 보수하여 새롭게 단장했다.


5

공부자동주성상(孔夫子銅鑄聖像)

공부자 동상은 대성전과 계성사 중간에 세워져 있는데, 대한민국에서는 최초로 세워진 공자의 동상이다.

당시 성균관 부관장이었던 박중훈이 고증하고 조각가 문정화가 제작하였고, 공부자동주성상은 1965년에 제주향교 유림들의 찬조금으로 세운 것이다. 

동상의 높이는 2.25m이고, 동상의 밑 부문을 포함한 전체 높이는 5.1m이다. 동상 앞에는 배례할 수 있는 공간을 두었다.


6

행단정(杏壇亭)

행단정은 공자가 제자들과 예악(禮樂)을 논하고 학문을 가르쳤던 곳이 은행나무 아래였다는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유학을 가르치는 학교에는 대개 은행나무를 심어 행단이라 불렀다고 한다. 은행나무는 특성상 수명이 길고 열매가 많이 열리며 벌레가 없기 때문에 교육이 오래 이어지고 학문의 결실이 풍성하여 불의에 물들지 말라는 의미가 있다. 행단이라는 이름 자체가 유교 학당을 지칭하는 명사로 쓰이기도 했다.

제주향교에서 행단정은 1985년 학문에 대한 열의와 그 사명을 지키고자 하는 제주향교 유림들이 성금을 모아 세웠고, 유교적 소양을 가르치던 햑교이자 공자를 제향하는 사당으로서의 제주향교를 상징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7

충효관(忠孝館)

충효관은 제주향교의 업무와 행사 등을 전담하는 사무실과 전사청의 제례음식을 준비하는 준비실, 도민들이 배움을 익히는 교육실이 마련되어 있는 건물이다. 교육실에는 실물과 동일한 목재 공자상이 안치되어 있다.


8

대성문(大成門)

제주향교 정문인 대성문(大成門)은 “밖에 있는 세 칸의 문”이라는 뜻으로 외삼문(外三門)이다. 외부와의 출입을 위한 문으로 외삼문의 입문과 출문은 성인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작고 낮게 만들었는데 이는 들어가면서 겸손의 몸가짐을 갖추라고 하는 의미이다. 동입서출(東入西出)이라 하여, 사람이 들어가는 문은 동쪽 사람이 나오는 문은 서쪽에 두었다.


9

하마비(下馬碑)

하마비(下馬碑)는 본래 1413년(태종13) 종묘와 궐문 앞에 세운 것이 우리나라의 시초라고 한다. 그 후 문묘와 지방 관부 등에도 이 하마비가 세워지기 시작했다. 하마비 앞에서는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 말에서 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제주향교 대소인하마비(大小人下馬碑)는 계급의 상하를 막론하고 성현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을 지날 때는 누구든지 말에서 내리라는 의미로 세워진 표석이다. 지방의 경우, 고을 수령은 제외 시키는 등 계급적 한계를 정하여 통행을 제한하기도 하였으나, 제주향교 대성문 앞에 세워진 하마비를 보면 계급의 상하 관계없이 말에서 내리게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제주향교가 문묘를 지내는 신성한 곳으로 그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며, 성인들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표현하는 행태로서 대소인하마비가 세워졌다고 하겠다.


10

대성전(大成殿) 내삼문(內三門)

“안쪽에 있는 세 칸의 문”이란 뜻으로 대성전을 출입하는 문인 내삼문은 학교와 사당을 구분하는 경계가 된다. 해가 뜨고 지는 자연법칙에 따라 동쪽으로 들어가고 서쪽으로 나오며 중문은 제사음식, 제사용 도구, 제사의 기도문만 출입이 가능하다. 대성전은 문묘를 지내는 신성한 공간으로 학교와도 구분되기 때문에 외삼문과의 차이가 있다. 외삼문의 중문은 왕이나 지방 수령(시장, 군수, 도지사)의 출입이 가능하나 내삼문의 중문은 출입이 불가하다.


11

계성사(啓聖祠) 내삼문(內三門)

다른 향교들과 달리 제주향교는 내삼문이 2개 있다. 계성사는 전국에 2곳 밖에 없는데, 계성사가 오성(五聖)의 선대인(先大人)을 배향하는 곳으로 계성사의 내삼문도 학교와 사당을 구분하는 경계가 된다. 대성전과 동일하게 해가 뜨고 지는 자연법칙에 따라 동쪽으로 들어가고 서쪽으로 나오며 중문은 제사음식, 제사용 도구, 제사의 기도문만 출입이 가능하다. 문묘를 지내는 신성한 공간으로 중문으로는 왕조차 출입이 불가했다.


12

비석군(碑石群)

비석군(碑石群)은 600년 넘는 역사에 걸맞게 대성전 후면 고송장림(古松長林)속에 자리 잡고 있다. 향교의 맨 위에서부터 아래로 배열된 방식이며, 향교의 이건 중건 당시의 안무사(按撫使), 절제사(節制使), 목사(牧使)의 기념비명(紀念碑銘)이 배열되어 있다.


13

제주향교개교육백주년기념비(濟州鄕校開敎六百周年記念碑)

제주향교 개교 600주년을 기념하여 1997년 『제주유맥육백년사(濟州儒脈六百年史)』가 발간되었고, 이후 1999년 1월 27일에 기념비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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